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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기ㆍ기계실, 지상 배치 제도화… 주차장 진입로 구조도 바꿔야”

<전문가 좌담> 원인과 개선 대책

안전한 지하공간 구축 방안을 논의하기 위해 분야별 최고 기술자들이 뭉쳤다. 사진 왼쪽부터 이재섭 건축전기설비 기술사, 김회률 기계설비 기술사, 정광량 건축구조 기술사, 엄재경 토질및기초 기술사, 그리고 좌담회를 이끈 이충재 한국건설산업연구원 원장.  /안윤수기자 ays77@


[e대한경제=이계풍 기자] 생활의 편리성과 쾌적한 거주환경, 보행자 안전을 위해 주요 건축물의 주차장은 지하에 배치된다. ‘지하층 용적률 산정 제외’는 지하 2∼10층 깊숙이 주차장이 자리 잡은 주된 배경이다. 하지만 도시계획상 배수설비가 미비한 상황에서 우후죽순 생겨난 반지하 주택과 전기ㆍ기계실, 관제실 등 빌딩 컨트롤타워가 지하 최하층에 자리 잡은 구조는 침수 피해에 취약한 지하공간을 양산하고 있다. 해안가나 수변 지역의 과도한 지하개발은 싱크홀 등 각종 사고로 이어지기도 한다. 대한민국에서 유독 도드라진 건축물 지하공간 개발의 문제점과 국민 안전확보를 위한 개선방안을 최고 엔지니어로 불리는 분야별 기술사들에게 들어봤다. <편집자>

[사회] 이충재 한국건설산업연구원 원장(도시계획 및 부동산학 박사, 전 행복청장)

[토론] 김회률 한국기계설비기술사회장(GE엔지니어링 대표), 이재섭 새벽엔지니어링 대표(건축전기설비 기술사), 엄재경 비엔디코퍼레이션 대표(토질 및 기초 기술사), 정광량 한국기술사회 부회장(CNP동양 대표, 건축구조 기술사) ※가나다 순


이충재 한국건설산업연구원장

△이충재 : 최근 기록적인 폭우로 지하주차장, 반지하 주택 등이 침수되면서 막대한 인명ㆍ재산피해가 발생했다. 다시는 대한민국에서 이런 안타까운 사고가 발생하지 않으려면 기술 전문가들의 시각에서 원인을 찾고 해법을 제시해야 한다.


정광량 한국기술사회 부회장

△정광량 : 이번 수해는 결국 정부의 잘못된 규제가 발단이 됐다. 지하공간은 용적률 규제 제외 대상이다. 그렇다 보니 개발자 입장에선 팔지 못하는 공간인 기계실ㆍ전기실ㆍ종합방재실(관제실) 등 주요 시설물을 최대한 지하 공간으로 돌리는 방식으로 수익성을 극대화하려는 속성이 있다. 지하공간 대형화가 급속도로 진행되고 있다.

기계실과 같은 시설물은 사람의 ‘뇌’와 같다. 각 세대에 물을 공급하는 펌프를 작동시키고, 발전장치를 돌려 엘리베이터 운행 등에 필요한 전력을 공급한다. 또, 태풍과 같은 이상기후 시에는 빗물 유입으로 인한 지하공간의 침수를 막도록 배수펌프를 신속히 가동한다. 지하 최하층으로 들어갈 시설물이 아니다.

미국, 싱가포르, 호주 등 해외에서는 지하주차장을 일부 지원하기도 하지만, 대부분 지상에 있다. 기계실ㆍ전기실 등 주요 시설은 전부 지상에 배치한다. 특히, 관제실은 비상시 소방대원들이 재빨리 통제해 상황을 일단락할 수 있도록 전부 지상에 두고 있다.

정부는 이번 사태를 거울삼아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 지하공간의 용적률 제외 대상 규정을 일부 조정하거나, 주요 시설물에 대한 지하 공간 배치를 제한해야 한다. 민간이 자율적으로 개발하도록 내버려 둔다면 돈의 논리에 의해 결국 지하로 내려갈 수밖에 없다.

△이충재: 지하공간의 개발은 우리나라와 같이 토지 면적이 좁은 지역에서는 토지 효용성을 극대화하는 좋은 수단이다. 용적률 규제에 손을 댄다면 값비싼 공사비를 내며 지하공간을 개발하려는 사업자가 줄어들 것이다. 다만, 지하 공간에 대한 일부 잘못된 활용으로 문제가 발생하는 것 같다. 좀 더 현실적인 대안은 없나.

△정광량: 현행 건축법에서는 건물의 고도를 제한하고 있다. 무분별한 지하공간 개발에 따른 부작용을 최소화하는 대안으로 지하 개발 깊이를 제한하는 방식을 고려해볼 필요가 있다.

엄재경 토질및기초기술사회 부회장

△엄재경 : 반지하 주택, 지하주차장 사고의 주된 원인은 지하공간의 구조적 문제라기보다는 치수의 문제다. 지하보도, 지하철 등 대부분의 지하구조물이 멀쩡한 게 그 증거다. 다만, 무분별한 지하개발은 지반침하(싱크홀)와 같은 또 다른 재해를 유발할 수 있기 때문에 적절한 관리감독이 필요하다. 지하공간을 확보하려면 수십여m의 깊이로 파내야 한다. 이 과정에서 발생하는 엄청난 토압으로 지하수와 토사가 대거 이동하는데, 이때 발생하는 공동구 현상이 싱크홀의 원인이다. 최근 5년여 전부터 시행 중인 지하안전관리에 관한 특별법 이후 토질조사와 설계에 대한 관리ㆍ감독이 엄격해지면서 지하 굴착에 따른 문제점이 상당 수준 개선됐다.

김회률 기계설비기술사회 회장

△김회률 : 지하공간의 개발과 활용 방식을 바꿀 수 없다면 구조적으로 풀어가는 것도 대안이 될 수 있다. 대부분의 지하주차장 진입로는 지면에서 바로 내려가는 구조로 설계된다. 지하주차장이 이번 집중호우에서 거대한 빗물 저장소로 돌변한 것도 이런 구조 때문이다. 진입로 구조를 오르막길 형태로 설계한 후 루프를 따라 내려가는 방식으로 설계한다면 별도의 차수벽 없이도 물막이 효과를 볼 수 있다. 또한 배수펌프 등 배수시설의 지하 공간 배치가 불가피하다면, 적어도 기계가 제기능을 할 수 있도록 최하층부에 설치하는 것만은 피해야 한다. 특정 층의 슬래브 두께를 두껍게 해 중량의 기계설비가 들어설 수 있도록 설계하는 것이 옳다. 펌프를 지하실에 설치하는 게 당장 공사비는 적게 들겠지만, 설치 이후 반송동력을 고려하면 운영비 절감이 가능하다. 지하차도 등 토목구조물에 대한 구조적인 보완도 함께 이뤄져야 한다. 지난 2014년 심각한 침수 피해로 인명사고가 발생했던 부산의 한 지하차도는 도로 밑 지하부에는 펌프실이 매립돼 있음에도 제기능을 못했다. 지하차도 중앙부(저지대)의 상ㆍ하향선 옆으로 설치된 집수정 구멍이 너무 좁게 시공된 탓에 지하차도로 유입된 빗물이 펌프실로 빠져나가지 못했기 때문이다.

이재섭 건축전기설비기술사회 부회장

△이재섭 : 전기실의 침수는 감전사고 등 2차 피해를 일으킬 수 있는 만큼 조속한 조치가 필요하다. 지하공간에 설치된 발전설비는 지면으로부터 물이 30㎝ 차오르면 누전차단기를 작동시켜 일부 전력 공급을 중단한다. 문제는 이번 아파트 침수 사태와 같이 모든 공간에 물이 차는 경우다. 이 경우 메인차단기를 내려 전력공급을 완전히 차단해야 하는데 기존 설비 대부분은 사람이 직접 차단기를 내려야 하는 수동장치다. 이 과정에서 감전사고가 발생할 수 있는 셈이다. 과거 가로등이 침수되면서 감전사고가 발생한 이후 정부는 추가 피해를 막고자 가로등의 안전기를 1m 위로 올려 설치하는 안을 법제화했다. 작은 가로등은 조치를 취하면서 대형 건축물은 그대로 내버려두는 것은 아이러니하다.

△이충재 :‘콤팩트시티’는 국내뿐 아니라 전 세계적으로 지향하는 미래도시 모델이다. 콤팩트시티를 구현하려면 지상과 지하공간을 적절히 활용하는 게 필수다. 이번 수해로 지하공간에서 크고 작은 사고가 발생했지만, 부정적인 시각으로 바라보기보다는 어떻게 활용하는지를 고민해야 할 때다.

이계풍기자 kple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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